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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297 조회수 3018 작성자 최보식 기자 (chosun.com) 작성일 2013.09.17 제목 조선일보 2013년 9월 16일 (7번국도를 걷다/뿌리출판사/이청작가)사회 뉴스 오피니언 기사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걷는다" 산사에서 고승과 법담을 나눈 뒤 만족감에 배 두드리며 돌아와도 다음날 아침이면 虛無와 마주해 나고 죽는 것, 내가 찾는 답 없었다 성철 스님은 3년간 투병 생활 당시 부산을 오가며 치료받아 '이분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신도들 중에는 의문 표시하기도 "국도는 대부분 자동차전용도로여서 차만 쌩쌩 달리지, 그런 길에 붙어서 사람이 걷겠다는 게 미친 짓이다. 눈먼 자동차가 들이받아도 도리가 없지." 이청(68)씨는 재작년 출생지인 울산에서 그가 사는 경기도 용인까지 보름 동안 걸어왔다. 작년에는 강원도 화진포에서 울산까지 국도를 따라 14일간 걸어갔다. 두 달 전에는 남해안을 걷다가 12일 만에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멈췄다. 그는 '7번 국도를 걷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게 갖고 왔다. 서점에서 팔리기는커녕 매대(賣臺)에 진열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왜 일흔을 앞둔 나이에 그는 혼자서 길을 걷는 걸까. 그는 사회적 명사도 뉴스메이커도 아니다. 국어 교사를 했고, 기업체 사사(社史) 편찬과 프리랜서로 밥벌이를 삼았고, 스물댓 권의 소설을 썼을 뿐이다.이런 그의 생각과 사는 방식까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의문과 망설임 사이에서 '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세상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다시 만났다. ―왜 국도를 걸었나? "길이 나있기 때문에. 숨김 없이 얘기하면 수행의 일종이었다. 선방(禪房)에 앉아봤지만 생각과 잡념에 더 매였다. 나는 걸으면서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워진다는 게 뭔가? "우리의 감각이 만들어낸 허상,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내가 서 있는 위치와 갈 곳이 보인다." ―걸어서 보름 만에 집에 도착해보니 자신이 자유로워져 있던가? "마지막 날 용인에 들어왔을 때다. 버스정류장에서 내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섰다. 나도 모르게 탔다. 집에 도착해서는 '이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버스 탄 데까지 되돌아가서 다시 걸어왔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행이라면서 꼭 그렇게 코스를 채워야 했나? "맞는 지적이다. 내가 한 짓을 보고 '아직도 뭔가에 매여 있구나'를 알았다. 완전히 걸었다는 걸 내게 각인시키려고 했으니, 속기(俗氣)가 남아 있었던 거지." ―감각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삶인데, 그걸 벗어나려 하면 삶이 될 수 있을까? "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죽음만이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끌고 가는 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생각을 버리면 자유를 얻는다. " 이청씨는 "내게는 양보할 수 없는 철칙이 있다. 가는 때와 장소는 내가 정하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최보식 기자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생각하면서 사는 게 온당하지 않은가? "아무리 추구해봐도 감각을 초월하는 경지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불가(佛家)에서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경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감각 세계의 오류와 허상을 들여다보고 이에 얽매이지 않는 걸 체득하는 것과 그냥 감각 세계에 빠져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 ―이런 점을 깨달으면 초월적 삶이 된다고 보나? "먹고 싸고 자는 일상은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도 화가 나면 화내고 맛난 음식이 있으면 달게 먹었다. 사는 모습은 일개 범부(凡夫)와 똑같았다. 일부 신도 중에는 '평생 도 닦아서 우리가 다른 게 뭔가' 하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분이 다른 게 있다면 감각과 욕망에 매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 선생, 나는 이런 도인 같은 말을 할 자격은 없다." 그는 도인은 아니지만, 이른바 산사의 고승(高僧)들을 많이 만나고 관찰해온 것은 틀림없다. 그에게 '불교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본인도 여러 차례 출가(出家) 이력이 있다. "1960년 4·19 직후에 '7월 총선'이 실시됐을 때다. 중 3학년이었던 나는 '사회대중당'(서상일·윤길중씨 등이 주동이 된 진보정당)의 유세를 보고 그 자리에서 입당했다. 그 뒤 5·16 쿠데타가 일어나 '혁명 정부'가 들어섰다. '반공(反共)을 국시'로 삼은 정부 아래에서 사회대중당 관련자의 검거 선풍이 불었다. 나는 학생이어서 정상 참작이 됐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이런 세상에서 공부할 필요가 없다'며 낙향했다. 중이 되려고 절을 찾아갔지만 하루 만에 다시 나왔다." ―왜 중이 되려고 했나? "출가를 결심했던 것은 '태어나서 번뇌하고 죽는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지, 어떤 놈도 대신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 치열하게 수행하는 그 모범적인 행위를 불교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절집도 인간 세상이었다. 고교 시절 몇 차례 출가를 했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내가 찾으려는 것은 석가가 깨친 그 깨달음이었지, 종교적 공동체의 삶은 아니었다. 그 뒤 밥벌이로 글을 써오면서도 끊임없이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승들을 찾아다녔다." ―고승들을 만나면서 나고 죽는 문제의 답은 얻었나? "산사에서 법담(法談)을 나눈 뒤 만족감에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날 아침 살펴보면 갖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와 맞닥뜨리기 일쑤였다." ―그분들에게 답이 없었다는 건가? "내가 찾는 답은 없었다. 이분들은 대부분 중국의 6조(祖) 선사들의 영웅담 같은 예화와 어록을 들어 말씀하신다. 저 옛날의 중국 고승보다 지금 우리의 스님은 못 미치는가. 왜 자신의 언어로 깨달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 수행에서 이분들에게서 배운 것은 없었다." 성철 스님. ―'불교 작가'라는 분이 이런 말을 하면 분란이 생길 텐데. "한번은 종단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썼더니 총무원 쪽에서 '이 선생은 왜 집안 얘기를 자꾸 건드리느냐, 덮어둘 일이지'라고 했을 때 '나는 집안 사람이 아니다'고 답했다. 똥 싸놓고 덮어놓으면 냄새가 안 나나. 또 한번은 어떤 글에 불만을 품고 승려가 전화를 걸어와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내가 집 주소를 알려주면서 '지금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네 패거리들을 모두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나는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내가 성철 스님을 친견한 것도 이분이 내가 쓴 글을 읽어보고는 '이 자식 한번 데려와 봐'라고 했다고 한다." ―선생은 '우리 옆에 왔던 부처(1993년)'라는 성철 스님 일대기를 쓴 적이 있는데. "지금껏 내가 쓴 책 30여권 중에서 그게 유일한 베스트셀러였다. 성철 스님이 다비식(茶毘式·화장을 해 유골을 거두는 불교 장례식) 하는 날에 딱 맞춰서 출판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출판 날짜를 그렇게 맞췄나?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스님 열반과는 무관했다. 당시 출판사에서 '우리 시대 스승이 없는데 그런 인물에 대해 써달라'고 했다. 나는 구속당하지 않으면 글이 안 나오니까 편집자에게 '토요일마다 염라대왕 같은 인상으로 찾아와주면 써놓겠다'고 했다. 2년 동안 매주 편집자가 찾아와 원고를 받아갔다. 마지막 원고를 넘긴 토요일 바로 그 다음 주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 열반하셨다'는 통지가 왔다. 나는 출판사에 '일관되게 다시 원고를 손봐야겠으니 출판하지 마라''고말했다. 하지만 이미 인쇄에 넘어갔고, 다비식 하는 날 책이 나온 것이다. '동작 한번 되게 빠르다'는 욕도 들었다. 그 덕분에 베스트셀러는 됐다." ―성철 스님을 진짜 '부처'라고 생각했나? "부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성철 스님은 말년에 3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부산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당시 부산동명목재 강석진 회장이 집을 지어주고 의사를 붙여줬다. 이를 본 신도들 중에는 '병치레 하는 이분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하며 실망했다. 나는 '이슬을 먹으며 사는 것은 인간이 아닌 신(神)의 경지고, 영혼이 자유로우면 도인으로 볼 수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높은 수행을 해도 늙고 병들고 죽는 생물학적 이치에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서암 스님(조계종 9대 종정)은 봉암사 선방에 계실 때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병도 컨트롤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분이 여든이 넘어 폐렴에 걸렸다. 병원에서 바늘을 주렁주렁 꽂고 누워 있었다. 이분은 의식이 돌아오자 '이게 무슨 꼴이냐'며 바늘을 떼고 나와버렸다. 용케 폐렴은 극복했다. 하지만 뒷날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상태로 3년간 투병하다 열반했을 때 '우리가 참선을 통해 깨친다는 것이 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죽음은 피할 수없고, 다만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닐까? "옛날 고승처럼 '나 내일 가련다'하며. 목욕재계하고 딱 앉아서 돌아가시면 멋진데, 요즘에는 그런 멋진 분이 별로 없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게 대부분이다." ―선생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내게는 양보할 수 없는 철칙이 있다. 가는 때와 장소는 내가 정하겠다는 것이다. 2년 뒤면 일흔인데 그 어느 시기가 오면 사하라 사막이나 히말라야로 가서 소멸됐으면 한다." ―'100세 시대'에 노인들은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왜 일흔이라는 나이를 말하는가? "옛날 인도에도 인생을 백년으로 잡고 4단계로 나눴다. 이를 '아슈라마'라고 했다. 25세까지는 스승 밑에서 배우는 시기, 그 뒤 50세까지는 자식을 기르고 일하는 시기, 50세~75세는 산림 속에 들어가 은둔하며 수행하는 시기, 75세 이후는 소멸되는 시기라고 했다. 늙음에는 현명, 지혜, 원숙의 뜻도 포함돼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욕과 망령도 있다. 나는 중년에 어느 날 술이 깨서 보니까 딸들이 대학생이 돼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죽음도 이렇게 오는 게 아닌가. 삶을 매듭짓는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준비를 말하는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떠날 때가 됐는데도 어디 가는 줄도 몰라서 되겠느냐." ―그게 필요한가? 우리가 왔던 것처럼 때가 되면 몸을 맡기면 될 일이지. "평생 밥벌이와 욕망에 구속돼 살았는데 갈 때는 자유롭게 가야지." ―선생 같은 삶의 태도와 생각이 보편적이라고 보나? "누구나 자신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두 살 위였던 형이 10년 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내가 '어디로 갈래? 필요하면 목사와 승려를 다 불러줄 수 있다'고 했을 때 형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가 계시는 곳이 있으면 그리로 가고, 없으면 말고. 무슨 걱정이냐'고 답했다. 지금 나보다 훨씬 젊었을 때인데 더 도사 같은 말을 했다." 그는 부인과 떨어져 지리산 문수골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그곳에서 팔리지 않을 책을 또 쓰고 있는 중이다. ‘7번 국도를 걷다’는 2012년 뿌리출판사에서 500여 컷의 사진 중에서 엄선해 편집한 도서로. (신국판 288면 값12,000원)이다. 뿌리출판사는 2013년 7월에 다시 이청작가의 ‘석가는 이렇게 말하였다’(신국판 256면 값 12,000원) 발행하였다.